영양 보조제 같은 여행

몰타에서 일주일 (마샬셜록 보트투어 사공 할아버지와 짧지만 인상 깊었던 대화)

nalda람쥐 2021. 6. 13. 09:12

 몰타. 벌써 3년 전에 다녀온 여행이라니 시간이 참 빠릅니다.

여행 후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유명 관광 명소보다는 찰나의 순간에 느꼈던 것들인 경우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길을 잃을까 너무 조마조마했었을 때,  헨젤과 그레텔 마냥 돌아갈 길을 생각해 이정표 역할을 할만한 것들을 찾아내려고 애쓴 나머지 여행 후에도 종종 문득 아무 이유 없이 그 거리가 생각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여행 중 만났던 사람들과의 짧았던 대화들도 기억이 오래갑니다. 유명 관광지를 직접 눈으로 보는 데에서 오는 감흥 보다도 역시 사람이 사람과 잠시 교류를 한 것이 여행 묘미 중 하나로 기억에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몰타 여행 중에서는 다른 여행 때보다 사람들과 말 섞을 기회가 많았는데 일주일 여행 중 몰타 대학교  부설 어학원에서 평일 오전에 영어 수업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침 두 시간은 비지니스 영어를 1:1로 듣고, 그다음 오전 시간은 소그룹으로 수업을 들었습니다. (레벨 체크는 몰타 도착 전에 온라인 시험을 봤었습니다. ) 영어 수업 끝나고 오후 시간 및 주말은 여행 다녔습니다.

 

 몰타 대학교 부설 어학원 조교가 베를린에서 온 독일인 여성이었는데 영어도 배울 겸 대학생 자격 인턴쉽으로 왔다고 합니다. 첫날 안내받을 때 제 주소가 독일이어서 안내받을 때 독일에서 뭐하는지 독일에서 왜 몰타에 왔는지 이것저것 물어서 기억이 납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알려 달라 했는데 이분은 첫날 등록 때만 보고 그 이후에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또한 몰타로 어학연수 오는 한국 학생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여름 방학 시즌이 아니어서 그런지 첫날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들 몇 명 정도 복도 등에서 보고 후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저가 들은 소그룹 영어반에는 헝가리 사람 1명, 스페인 사람 몇 명, 일본 사람 1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그룹은 계속 진행되는 반인데 저가 일주일만 같이 들은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몰타의 공용어는 몰타어와 영어이며 그 외에 이탈리아어도 쓰입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64년 9월에 독립을 했습니다. 정부에서 어학 산업을 장려하는 듯 해 많은 영어 어학원이 있으며 유럽 내에서도 방학에 놀며 영어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 꽤 있는 듯합니다. 재미있게도 영어 가르치려고 온 영국인 영어 선생님들도 사설 어학원에 꽤 많이 있는 듯합니다.

 

 

Blue Grotto. 푸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보트가 뜨지 않은 날. 작은 소형 보트로  돌 기둥 사이를 다니는  투어가 있습니다.

 

 

 몰타에서 발레타 수도 이외에 처음으로 간 곳은 Blue Grotto, 푸른 동굴입니다. 여행 책자에서 제일 멋있게 본 곳이라 제일 먼저 향했습니다. 아쉽게도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보트 투어는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부는 바람에 머리는 엉망이 되었지만 바다 파도 소리와 웅장한 장관을 보니 마음이 뻥 뚫리며 시원해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는 곳이 사람의 기질에도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이런 해안 동굴 및 절벽을 매일 보며 사는 사람들은 보통 어떤 성향을 가지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물론 자연 이외에도 종교, 침략 받았던 역사 및 주요 산업에도 국민 기질이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몰타 가는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학교 영어 선생님이라는 몰타인 아저씨, 몰타 대학교 어학원의 은행 퇴직한 뒤 비즈니스 영어 가르치는 할아버지 영어 선생님, 영어 교원 자격증을 따고 어학원에서 일하는 나보다 어린 여자 영어 선생님, 그 외에 버스 기사 아저씨, 식당 및 상점 점원들 등, 마샬 설록의 보트 투어 길 가르쳐 주는 행인 들 모두 친절했습니다. 몰타 인구의 약 96%가 가톨릭교 임이고  관광업도 나라 살림에 큰 한몫을 하니 친절이 몸에 베였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섬나라 사람 성향이 약간 폐쇄적인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저가 적게나마 접해본 몰타 사람들은 쾌활하고 열린 느낌을 주었습니다. 

 

 

발레타 길거리에서 일주일 정도 가는 타투를 고양이 와 그 발자국 모양으로 했습니다.

 

 

 길 가다가 길 고양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마을 어귀에 사료 놓은 통들이 일정 시간에 있다가 수거해가는 듯했습니다. 어느 공원에서 만난 고양이는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저를 졸졸 계속 쫓아왔었습니다. 아쉽게도 먹이 줄 것이 없었습니다. ^^

 

 

옛 수도였던 임디나 Mdina

 

저와 도착일이 같아서 알게 된 저보다 2살 많은 콜롬비아 여자분과 임디나에 같이 구경을 갔었습니다.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아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참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저가 아이스크림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을 어떻게 눈치챘는지 아이스크림 먹자고 먼저 말을 하는 게 기억이 납니다. 대부분 여행 때는 셀카가 많은데 이 친구 덕분에 전신사진도 임디나에서는 많이 찍었습니다.

 

 임디나는 몰타의 옛 수도인데 사람들이 빠져나가서 인구가 적은 조용한 마을이 돼버렸습니다. 좁은 골목길들 안을 따라 걷다가 보면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발레타에서 먹은 한끼 (좌) 몰타 어느 해변가에서 먹은 한끼 (우)

 

 

몰타에서 현지 음식 중 하나는 토끼고기인데 메뉴에 있는 것을 보았지만 먹지는 않았습니다. 해산물 스파게티이나 생선류를 많이 먹었습니다. 사전 인터넷 조사 없이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가 여행 중에 지나가다가 식당을 빨리 골라야 할 때 고르는 나름의 기준은 다음과 같은데 이 기준만 통과해도 내 돈 주고 밥 먹고 나서 기분 나쁠 일이 없었습니다.

1) 식당에 손님이 어느 정도 있는가

2) 일하는 종업원은 친절해 보이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가

3) 인테리어 및 전체적인 위생상태는 한눈에 보기에 어떠한가

4) 식당 주변에 손님을 유인하려는 바람잡이가 있느냐 없느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해변

 

 위 사진의 해변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수영복을 챙겨갔지만 햇빛은 강해도 물속에 들어가기에는 쌀쌀한 듯한 날씨여서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수영을 하지 못한 것은 약간 아쉽습니다. 하지만 모래사장에 앉아서 바다 구경만 열심히 하며 멍 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뽀빠이 마을을 바라보며

 

 

테마파크 인 뽀빠이 마을, Popeye Village 도 갔었습니다. 입장료를 내야 하는 테마파크는 들어가지 않고 윗 절벽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휴식이 되었습니다. 바닷물 색깔이 그림처럼 맑았고 하늘도 바다의 일부처럼 보였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있다면 방문하면 매우 좋아할 듯했습니다.

 

 

마살셜록 어시장. 북적북적 사람 사는 느낌.

마샬 셜록 Marsaxlokk 마샬셜록 시장도 떠나는 날 오전에 빠르게 구경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구경하는 곳이어서 다시 오고 싶은 마음과 약간의 여행 중 시간은 늘 빠르게 간다는 아쉬움을 느꼈던 곳이기도 합니다. 시장은 시골 동네 시장 같은 형태인데 많은 관광 기념품을 팝니다. 저도 마샬 셜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몰타 전통 배 조각 모양의 자석을 하나 샀습니다. 그 외에 생선이나 생활용품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시장통을 거닐다가 10분 남짓한 보트 투어를 해주는 곳을 발견하고 보트 투어를 하기로 합니다. 승객이 저 혼자 한 명이어서 약간 겁도 났는데 모험심을 발휘해서 보트 투어를 했는데 역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트 운전해주시는 분은 할아버지였는데 투어 해주는 동안 간단히 몰타 역사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여행국의 현지인이 의례 그렇듯 저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남한에서 왔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대한민국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몰타와 한국이 축구 경기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여행 중 나이 많은 분들은 한국을 정확히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서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솔직히 몰타 여행을 준비하기 전에는 몰타라는 나라에 대해 몰랐는데 몰타의 역사에 대해서도 줄줄 알려주고 남한도 알고 있다니 시장통의 현자처럼 느껴졌습니다. 

 

보트투어한 배와 구명조끼 하나 입고 튜브 옆에 착석한 나

 

할아버지는 평생 동안 늘 햇빛 아래에서만 일했는지 피부가 갈색이고 주름살도 많았습니다. 저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셨는데 사무실에서 일하는 일반 사무직이라 답했습니다. 중간 관리직은 인공지능 시대에 대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고  전문직도 아니고 일하고 있는 나라도 모국이 아니기에 어느 정도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휴가 겸 온 여행에서도  부족한 영어 실력을 위해 영어 쓰는 환경에 조금이라도 나를 노출해볼까 하는 마음 탓에 영어 수업도 동시에 들은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참 신기했습니다. 저보고 머리를 많이 쓰는 일이어서 스트레스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늘 전문직이 아닌 대체 노동력이라 생각해 스스로 늘 불안해하는 저에게 왠지 모를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어느 경제 혹 자기 계발 관련 책에서 읽은 일화 투자 개발자가 해안 도시에 대규모 리조트 단지를 만들려고 그곳 어부에게 땅을 팔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땅을 팔면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면 힘들게 고기잡이를 하지 않고 부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고 하면서요. 그 부자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것은 이미 어부가 누리고 있는 삶이었는데 해변에서 석양보고 가족과 시간 보내기 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부는 그런 삶이라면 이미 누리고 있다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왠지 이 할아버지가 그런 우문현답을 할만한 인물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보트 투어를 마치고 시장 앞 한편에 있는 카페에서 빵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일주일간의 여행을 돌이켜 보며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여행 후에 이만큼 여행했으면 됐다 라는 나라들이 있고 기회가 되면 어떻게든 또다시 오고 싶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몰타는 단연코 후자입니다.

 

 여행 후 돌아와서도 저가 하는 일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생존을 위한 노동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나 정체된 느낌 때문에 직업에 대한 이유 모를 막연한 불안감이 들 때 종종 마샬 셜록 어시장의 보트 투어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리곤 합니다. 무슨 해결책이 있는 대단한 대답도 아니었는데 종종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너도 이만하면 괜찮다 라는 말을 단지 누군가에게서 듣고 싶었건 아니었나 싶습니다.

 

 몰타에서 몰타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간다는 고조 섬은 가보지를 못했는데 언젠가 꼭 가보고 싶습니다. 다시 몰타를 갈 수 있는 날까지 현재에 충실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잘 지내야겠습니다.^^

 

 

-끝-